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 총균쇠 줄거리 / 총균쇠 요약 (feat 문명 게임)

총 균 쇠, 총, 균, 쇠

 

 

총 균 쇠 (반양장)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인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인간 사회의 다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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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기있던 게임중에 "문명"과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시리즈물로 아직까지도 플레이 하는 사람들이 제법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명"은 도시를 건설해서 유지하는게 목표인 게임인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엔딩도 퀘스트도 없었으니까요. 공업도시를 건설하면 오염도가 올라가고, 그래서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낮아지면 반란도 일어납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게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수많은 작은 플라톤들이 맵을 누비면서 밤잠을 잊곤 했었습니다.

 

문명2 게임 화면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은 17세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지중해를 누비며 교역을 돈을 벌 수도 있고, 그 돈으로 세계지도를 만드는 여행을 떠나거나 유적을 탐사하러 세계를 탐험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알렉산드리아나 튀니지 같은 항구주변을 맴돌며 오가는 배들을 상대로 해적질도 할 수 있고요. 지중해가 중심이기 때문에 한반도까지 오려면 매우 비싼 대가(게임머니와 선원들의 목숨)을 치러야만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반도까지 가곤했었던 기억이 나네요.(물론 17세기가 배경이기 때문에 카이로 운하가 없어서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서 가야 했었죠. 저절로 바스코 다 가마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 게임들이 재미있었던 건, 말할 수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는 복잡한 세상을 축약해서,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루마블이 잘 안풀려서 비굴하게 돈을 빌려야 할 때의 씁쓸함이 어른들의 세계를 어느정도 이해하도록 해줬을 때처럼 말이지요.  

 

<총,균,쇠>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이 책이 재미있는 건 인류 문명사를 왠지 한마디로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이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문명이나 대항해시대처럼요.  

 작가는 '역사과학'을 이야기합니다. 광범위한 인간의 문명사에 대해 서술하면서, 진화생물학, 언어학, 분자학 등 여러 분야를 총 망라하여 추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장에서는 '역사학'이 가지는 현재의 위상이 다른 학문에 대해 낮음을 고백하면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앞으로  '역사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역사과학'이 되어야 하며, 앞으로의 역사학자들은 사료의 고증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타학문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추론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입이다. 에드워드 윌슨 역시도 '인문학'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그의 책 <통섭>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두 석학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으로, 책장의 반을 넘기도록 문명발달사의 간극이 비롯되는 것은 모두 환경적인 요인에 기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까닭에 너무 환경결정론적이지 않은가 싶기는 했습니다. 지리적요인, 유전적 다양성, 기후 이 모든 요인들이 결정적이고,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요인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사실들도 많으니까요.

 

그 중의 하나가 황하문명입니다. 4분의 3쯤 읽었을 때도 중국에 대한 부분이 언급되지 않아서 계속 마뜩찮아하던 와중이었는데요. 저자는 자료부족 때문인지 자신감 부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독자들이 반론을 잔뜩 제기할 만한 주제들에 마지막 장을 할애했더군요. 만약 성마른 독자라면 마지막 장부터 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환경적인 요인이 유리했던 중국은 왜 지구를 반바퀴 돌아 유럽을 정복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간단명료하지만 조금은 자신감 없게 문화적 요인을 듭니다. 그야 당연하죠. 환경적 요인에서는 거리낄 것이 없으니까요.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중앙집권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설득력있는 주장이긴 합니다. 중앙집권화되어 있는 강대국이었으므로 주변국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고, 그냥 자신의 체제만 잘 유지하면 그만입니다. 반면 유럽은 여러 국가와 민족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경쟁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경쟁이 낮은 곳을 피해 그들은 유럽 밖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더 많은 요인들이 존재합니다. 화폐의 발명, 큰 강들과 지중해를 통한 자유로운 교역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요인, 중앙아시아에서 도입된 항해술, 거대기업의 기반이 되는 거대자본가의 등장 등 셀 수 없을만큼의 다양한 요인들이 관여하지 않았을까요?  

 

  '문화'라는 포괄적인 단어는 매직 워드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됩니다. 어떤 점 때문에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드는지 알 것 같은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얄리가 던진 질문들. 저자가 독자에게 되묻는 물음들. 그 물음표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던져봤을 질문들입니다. 왜 유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떤 나라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그러하지 못한가? 왜 어떤 민족은 정복하고 어떤 민족은 정복당하는가? 어째서 그들은 혁신에 성공했고, 그들은 뒤쳐졌는가? 이 모든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로 답했고, 답해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세상은 한마디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불분명한 설명, 검증되지 않고, 검증될 수도 없는 대답들의 선두에 있던 말이 바로 '문화적 차이'라는 단어입니다.  

 

  문화적 차이. 이 말은 이혼 사유 상위권에 늘 랭크되어 있는 '성격차이'와 같은 말입니다. 이 애매모호한 말들로 인해 민족우열론과 같은 오해와 비극이 생겼습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모든 차이에 우열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도 이러한 우열이 비롯된 계기가 환경적 요인에 있다는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족과 인종의 일치, 지리적으로 남북축이 동서축보다 문화의 전파력이 강하다는 점 등등,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박할 수 없는 단단한 논리로 무장한 채 등장해서 인종우열론을 무장해제 시켰죠. 아직도 인종적 편견에 휩싸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헤아려보면 의미있는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밖에 의미있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중국의 중앙집권화, 미국의 핵폭탄 결정권이 극히 소수에게 제한되어 있다는 정보는 흥미롭습니다. 대개 민주정을 발달된 정치행태로 보지만, 아테네에서는 결국 우중정치로 흘러 패망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중국의 일당독재체제와 미국의 민주정은 얼핏보기엔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권한들(가령 국가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중앙집권화, 즉 권력의 집중화가 국가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일면만 보고, 권력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거의 분리가 아니라 분해까지 도모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만약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포한다고 했을 때, 대응사격할 것인가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다가는 그 사이에 민주적으로 결정할 사람들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거라는 걸 그 분들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말이죠. 

 

작가는 이 책을 낸 이후에 혁신적인 기업들로부터 혁신을 이루려면 어떻게 조직을 관리해야하는지에 대한 편지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혁신적인 조직이란 분열과 통합이 적절하게 이루어진 '최적 분열의 법칙'을 주장합니다. 뭐든 '적당해야 좋다'는 말을 좀더 멋지게 한 것 뿐임을 이해는 하지만, 좀더 구체적인 해답은 없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외에도 작가가 '개인의 특이성', '발명의 영웅이론' 등으로 역사속에서 개인의 역할을 너무 축소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알렉산더 한 명 때문에 현대 남성들이 모두 매일 아침 일어나 그 귀찮은 면도를 하는 광경을 떠올려보면 미미하다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역사의 기로 속에서 결정권을 가졌던 사람들이 선택을 달리했을 때(가령 원폭투하 같은 것)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을텐데 말이죠.  

또, 발명품이 발명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쓰여진다는 점은 얼마전에 읽었던 또다른 책, 스티븐 존슨의 <이머전스>와 <바보상자의 역습>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축음기를 발명했던 에디슨은 심지어 축음기가 단순한 음악재생용으로 쓰여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하죠.  이처럼 어떠한 새로운 매체나 컨텐츠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을 수용해 애초의 그 대상이 다른 것으로 변질되거나 영향을 받는 것을 카리켜 '슬리퍼 커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니 놀랍습니다.    

 

 

 

예전에 신화가 품고있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현생인류는 살아남은 카인의 후예라서 서로를 죽이고 전쟁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수많은 일화들 중 가장 중요하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은 강한 무기를 가진 종족이 다른 종족을 몰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보면 기술적 진보가 도덕적 진보와 항상 보조를 맞춰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기술적 진보가 앞섰고, 그 다음에 그것을 제한하는 법률 보완이 뒤따랐습니다. 하물며 유럽인에게서 받은 머스킷 총을 들었던 마오리 족은 어땠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시행착오들을 사람들의 피로 써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마 그런 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끊임없는 학교폭력과 근절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시스템, 서그리고 높아지는 자살률. 이 모든 오류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이 침략했던 사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날 경제적 식민지가 되지 않도록 무역협정을 할 수는 있습니다. 625전쟁을 되돌이킬수는 없지만 또다시 내전이 발발하는 것은 막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저자는 "수천년 전의 역사가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란 갑자기 혜성처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모두 인과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어느 계단을 밟을 것인가에 따라 내일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역사로부터 "상세한 인과율의 고리를 배우는" 일입니다. 세상은 게임처럼 리셋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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