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를 대충 정리

 

발터 벤야민(1892-1940)은 기술복제시대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 빠르게 사고하고 예측했다. 특히 그는 사진술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사진의 작은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현재의 사진술과 비교할 때 당시의 사진은 상당히 너절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을 짧은 시간(?)인 8시간 만에 재현해 내는 모습은 놀라움이었다.(니엡스의 8시간의 노출은 다게르에 의해 20분으로 단축) 이에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라는 사람에서부터 '사진의 역할은 학문과 예술의 시녀 역할을 하는 것이 사진 본래의 의무'라고 보들레르는 역설했다. 또 한편으로는 사진술이 세상의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발터 벤야민은 냉소적인 시각으로 이런 기술복제 시대의 현상을 바라봤다. 그는 아우라의 붕괴를 외치는 동시에 진보적인 시선으로 이를 예측했다. 사실 복제라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서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그림은 복제가 많았다고) 하지만 시대를 거치며 원본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복제가 시작하며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원본과 똑같은 복제품은 좀 이상한 모순적 표현인듯하다. 원본과 똑같은 복제품은 결국 복제품이 원본과 같으니까 원본이 2개인 셈인데 복제품이라는 표현이 맞는 걸까?)


그가 말한 원본이 하나가 아닌 다수일 때 보이는 아우라의 상실은 이후 반론이 제기됐다. 오히려 아우라가 발생해 버렸거나 또는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 아직도 우리는 미술관에서 기술복제로 탄생된 작품에서 아우라는 느낀다. 역시 앤디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 같은 작가의 실크스크린에서 아우라(돈 냄새)를 느낀다. 현대에 와서 그가 예측한 부분들이 다소 다르게 빗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복제에 의해 그가 예측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등장했고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게 됐다는 점에서 한 세기가 다되어가지만 왜 아직까지 그의 글이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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