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2013 , 고레에다 히로카즈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문학동네

책이 출간되기 반년 전쯤,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고 ‘종합학습’을 하던 나가노 현의 한 초등학교를 3년에 걸쳐 취재했었다. 이나 초등학교 봄반, 이 학급의 아이들은 목장에서 빌린 송아지 한 마리를 키워 교배를 시키고 젖을 짠다는 목표를 세우고 3학년 때부터 계속해서 송아지를 돌봐왔다. 그러나 5학년 3학기가 시작되기 조금 전,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어미소가 조산해버렸고, 선생님들이 이를 발견했을 때 송아지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울면서 송아지의 장례식을 마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일은 염원했던 젖 짜기였다. 사산을 했어도 어미소의 젖은 매일 짜줘야만 했다. 학생들은 짠 젖을 급식 시간에 데워 마셨다. 즐거웠어야 할 이 젖 짜기와 급식은 본래 기대했던 바와는 달랐다. 그것은 이들이 이 ‘상(喪)’중에 쓴 시와 글에 여실히 나타났다.

쟈쟈쟈

 

기분좋은 소릴 내며

 

오늘도 젖을 짠다

 

슬프지만 젖을 짠다

기분은 좋지만 슬프다는, 슬프지만 우유는 맛있다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알게 된 걸 성장이 아니면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는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환상의 빛>, 죽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문다는 림보라는 중간역에서 그들의 추억을 영화로 만든다는 설정의 <원더풀 라이프>, 집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사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아무도 모른다>,<공기인형>,<걸어도 걸어도>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추천드릴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입니다.

 

주인공 료타는 사랑스런 와이프와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과 함께 도쿄의 고급 아파트에서 사는 성공한 회사원입니다. 그는 어느날 산부인과에서 6년 간 키운 자신과 똑 닮은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연락이 받게 됩니다. 그리곤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사고 있는 친아들과 그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조용하지만 료타의 심리적 혼란을 잘 드러납니다. 생물학적 혈연 관계와 추억과 기억의 시간으로 채워진 부자 관계 속에서 선택해야만하는 료타의 한숨이 들립니다. 영상은 이런 상황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친아들을 데려오는 장면에서 풍경을 배경으로 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고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갑니다. 또 서로 갈라진 길의 끝을 걷다가 하나로 만나게 되는 화면은 료타와 아이의 관계를 화면을 통해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가족이 된다는 것’과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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