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소설가의 일
- 문화생활/책과 영화
- 2020. 1. 14. 22:09
소설가가 재능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이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작품과 작가는 동시에 쓰여진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그 작가의 일부도 완성된다. 이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무효화 되지 않는다. 만약 국가가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고 해도 그 작품을 쓰기 전으로 그를 되돌릴 수는 없다.한 번이라도 공들여 작품을 완성해본 작가라면 그 어떤 비수에도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안다. 내가 생각하는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가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자신의 것인지, 읽은 책의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에디에서도 오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문장만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은 저절로 구분이 될 테니 지금은 마르케스처럼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권터 그라스처럼 휘갈겨쓰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젊은 소설가의 막대한 생산성은 거기서 나온다. 살만 루슈디가 말한 그 열정만이 그의 무기다. 이 사랑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을 쓰지 않는 젊은 소설가라면 이상하다는 생각만 든다. 어떻게 그 일을 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건 비평가들에게나 어울린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 한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소설가의 일, 김연수